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나는 가수다 (문단 편집) == 중국 진출 == [[파일:external/d2r4esoini6f0l.cloudfront.net/content_womany_wo_shi_ge_shou_1407990797-3935-6248.jpg]] [* 타이틀에 스폰서가 병기되어있는데, 리바이라는 세제로 중국에서 란웨량, 나이아쓰와 더불어 중국내에서 유명한 세제 브랜드중 하나로, 중국 현지 시장에서는 대략 미국산 세제 브랜드 [[타이드]](중국어로는 타이쯔라 불린다.) 등과 경쟁하는 급의 마켓셰어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https://dream.kotra.or.kr/kotranews/cms/news/actionKotraBoardDetail.do?SITE_NO=3&MENU_ID=430&CONTENTS_NO=1&bbsGbn=254&bbsSn=254&pNttSn=188279|#]].] 중국 [[후난성]] 민방인 [[후난 방송영상 그룹]]이 판권을 사 2013년 1월 18일 첫방송을 시작하였다. 첫회 시청률이 1.46%를 기록하는 등 2013년 1월에서 4월까지의 방영기간동안 동시간대 전국 1위를 유지했다. 중국은 지역별로 tv채널이 수십개에 이르기 때문에, 시청률 1%를 넘기기도 힘들며, 시청률 1%를 넘는 프로그램은 1년에 10개 내외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판 [[아빠! 어디가?]] 방송이 종료되는 2014년 초 2기 방송을 확정지었다. 2기는 2014년 1월부터 4월까지 방송되었으며, 150분간 생방송으로 진행된 최종화는 평균 시청률 2.3% 최고시청률 4.3%를 기록하며 동시간대 전국시청률 1위를 기록했다. 중국에서는 워낙 인구가 많고 채널도 많은지라 잘나가는 드라마는 2%로 정도만 돼도 메가톤급으로 히트를 친 것이다. [[http://entertain.naver.com/read?oid=213&aid=0000601866|3기는 2015년 1월 2일부터 방송되고 있다.]] 1기는 완벽하게 했지만 2기는 말이 좀 많다. 1기 때 이후로 [[높으신 분]]들이 신경쓰는 것도 이유중 하나. 여기엔 중국의 음악계 특유의 상황이 있다. 중국에서는 중국대륙의 가수보다는 어째서인지 대만의 가수가 더 인기나 실력자들이 많다. '''사실, 중국 대중음악계의 상황은 다른 나라와 상황이 많이 다르다.''' 1950년대 전까지는 일반적인 대중음악이라고 부를 것이 없었다. '''1960년대에는 그 악명높은 [[문화대혁명]] 때문에 대중음악이 검열이 되면서 완전히 전멸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노래들은 마오쩌둥 찬양가나, 공산당 혁명가, 정권 찬양가, 인민해방군가같은 것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다가 1970~80년대에는 개혁개방으로 인해 홍콩의 광동어 노래와 대만의 가수들, [[덩리쥔|등려군]]이 음악계를 평정했는데, '''문제는 이 사람이 중국 대륙이 아니라, 대만 출신 가수다.'''[* 심지어, 등려군은 천안문 사태가 벌어졌을때 공개적으로 시민들을 지지하기도 했다.] 심지어 옆나라 [[몽골]]은 애초에 동아시아보단 동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1980년대 [[욤자깅 체뎅발]] 시절부터 사랑노래 부르고,[* 이 시기의 대표적 명곡이 Улаанбаатарын үдэш(울란바토르의 밤). 이 노래 역시 중국에 번안되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참고로 몽골의 인구는 중국의 웬만한 도시보다 적은 300만명이다.] 1980년대 극후반에 이미 [[힙합]]이 들어왔다. 그나마 1990년대에 들어서는 [[http://www.letv.com/ptv/vplay/1878184.html|beyond]][* 조용필과 부활의 장점만을 합쳐놓은 밴드 정도 된다. 이마저도 홍콩 출신 밴드. 리더 黃家駒(황가구)는 1993년 타계하고 점점 인기가 떨어지다 해체하고 멤버들은 개인 활동 중. 황가구가 죽고 나서 보컬을 맡았던 기타리스트 황관중도 이 중국판 나가수에 출연했다.]라든가, 한뢰 등 좀 괜찮은 가수들과 노래로 살아나는 듯 했다. '''그러나, 2000년~2010년대에 들어서자 중국에서는 거대한 [[한류]]폭풍을 맞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대만 출신의 가수들을 불러오지 않으면 사실상 인재풀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래도 중국 대륙의 보석이 있긴 하다. 주필창 - 우리나라에서도 알고 있는 그 주필창이 맞다.[[http://www.letv.com/ptv/vplay/2247907.html|영상]] 이 무대는 황기산의 편곡에도 참가한 우리나라의 표건수가 편곡했다. 우천 -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허각]]과 [[신용재]]가 듀엣을 하는 그룹 정도로 볼 수 있다.[[http://v.qq.com/cover/1/1ik75uw5bxos64n/e0012lbemaw.html|영상]] '''결국 [[문화대혁명]]의 후유증이 컸기 때문에 대륙에서 대만 가수들을 등에 업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에 자존심이 많이 상한 것으로 보인다. --자업자득이지 뭐겠냐?--''' 시즌1 때는 출연자 12명 중에서 6명은 중국, 5명은 대만, 1명은 홍콩가수였다. 중화인민공화국 인구는 13억명이 넘는데 대만 인구는 그 '''50분의 1''', 즉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 양쪽 모두[* 다만 중화민국은 현재 직할시들로 대만 전체를 대만성으로 간주하지는 않기에 조금 다르다.] 중국의 1개 성으로 간주하는데도 중국 성들의 평균 인구도 안되는 2300만명이기에 인구 비례로 비교해 보면 더 처참하다. 결국, 중국의 대중음악계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후유증은 오늘날 중국의 대중음악계에서도 크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었다. 과거 문화대혁명 시절에 대중음악계를 미친듯이 검열하는 바람에 유능한 중국 대륙 출신의 가수들이 활약하지 못하게 되면서 싸그리 사라져버리는 공백기가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중국 대륙 출신의 가수들보다 실력이 있는 대만의 가수들에게 높은 순위권을 내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현재에도 중국대륙 출신의 가수들보다는 대만 출신의 가수들이 실력자들과 인기가 더 많다. 결국, 중국 대륙 출신 가수들은 상대적으로 비주류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2000년~2010년을 대표하는 노래가 나오려고 해도 미국과 유럽발 음악이 인기를 얻은데다가 한류폭풍도 불어닥쳐서 가뜩이나 인재풀이 좁은 중국을 대표하는 유명한 가수들의 인재풀이 더 좁아졌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중국 출신의 가수들이 있긴 하지만, 부르는 노래가 고작 정권을 찬양하는 노래나 군가같은 노래뿐이다. 이런 노래가 중국의 대중음악계를 대표하면서 상위권으로 오를리가 있겠는가? 최종 결산 1위가 대만가수 임지현이었는데, 임지현의 국적이 중국이 아니라 대만이라서 가왕은 중국가수 우천(羽泉)이 가져갔지만 나름대로 자존심이 크게 상한 모양이다. 여담으로, 가왕 듀엣경연에서 황기산이 파트너로 데려온 사람은 [[더원(가수)|더원]]이 사이좋게 를 불렀는데 평가가 그렇게 좋지가 않다. 심지어, 두 사람은 시즌 3 끝나고 정상대결[* 전 시즌의 참가자들이(스케줄이 되는 인원을 추려서) 한데 모여 1:1로 대결하는 것이었다. 이벤트 형식으로 치뤄진 경연이다.]에서 대결상대로 만났다. 그리고 파격적으로 생방송을 4시간으로 편성했다. 연말 방송도 아니고 이렇게 방송을 편성하는 것은 이 프로그램의 인기가 얼마나 많은지 보여주는 부분이다. 시즌 2에서 나온 대만가수는 장우(张宇)와 [[동력화차]] 단 두 팀 뿐이었고, 한 명은 홍콩가수 [[등자기]], 그리고 세 사람은 [[말레이시아]] 가수였다. 그중 화교출신인 품관과 조격은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비교적 낮은 순위로 빠르게 하차했지만 茜拉(Shila)가 출연함으로 체면치레를 했다. 그녀가 나가수에 출연한 건 뜬금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중국동방위성채널의 오디션 프로그램 <声动亚洲>에서 우승한 경력이 있는 가수다. 다만, 활동하는 곳과 출생지가 말레이시아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해의 최고 여자 인기가수 TOP 순위에 들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그리고 위유(韦唯)는 정권 찬양 일색인 모습으로 일관하면서 [[마오쩌둥]] 찬양곡 <太阳最红毛主席最亲>을 부르고 광탈하고 말았다. 시즌2의 인기도 나름 높았으며, 특히 마지막 생방송의 경우는 크게 호평을 받았다. 가왕은 중국가수 한뢰(韩磊)가 가져갔고 홍콩 여가수 등자기가 2위였다. 시즌 1과 2의 인기에 힘입어 당연히 시즌 3도 나왔다. 이번엔 총 13명의 출연자들 중 2명이 대만가수([[A-Lin]]과 소황기), [[대한민국]] 나는 가수다 시즌 2의 가왕이었던 [[더원(가수)|더원]]이 출연했으며, 말레이시아 가수는 이가미(李佳薇) 한 명 뿐이었고, 싱가포르의 유명 여가수 진결의와 홍콩 국적의 가수인 [[고거기]] 등이 고루 출연했다. 특히 MC는 홍콩출신인 [[고거기]]가 맡았으며, 그가 탈락한 이후엔 손남이 맡았다. 이번 시즌의 특징은 전체적으로 참가자들의 눈물인데 매 시즌마다 우는 사람이 나온다. 특히 [[A-Lin]]이 가장 많이 울었고, 한홍의 경우는 진결의가 탈락한 이후 새 참가자 이영호(李榮浩)를 대하는 태도 때문에 대차게 욕을 먹었다. 그리고 3번째 파트가 시작되며 투입된 [[더원(가수)|더원]] 때문에 국내에선 온갖 기사들이 쏟아졌다. 본 경연이 끝난 뒤 치러진 패자부활전에서도 당당하게 안정권에 들어 가왕전까지 참여했으며, 최종결산 3위에 오르면서 그의 인지도를 대폭 올렸다. 최종 가왕전 듀엣 파트너엔 [[린(가수)|린]]이 나오기도 했다. 가왕전에서는 듀엣무대 이후 순위를 발표하는 시간에, 손남이 스스로 가왕경연을 포기하겠다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후배들을 위해 가왕경연을 포기하겠다는 대인배적인 말에 그곳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PD는 '''패닉'''. 심지어 중국 나가수의 가왕전은 '''생방송이다.''' 결국, 긴급 회의에 들어가고 급조한 룰로 가왕전을 치뤘다. 최종 순위는 1위에 한홍, 2위에 이건, 3위에 더원으로 마무리되었다. 최종 가왕은 한홍이었다. 시즌마다 프로그램이 흥행가도를 달리는 덕에 2016년, [[我是歌手4]] 방영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6년 1월 15일, 후난TV에서 시즌 4를 방영한다. 매주 금요일, 한국 시간으로는 23:00에 시작된다. 출연진은 다음과 같다. 중국, '''HAYA, 관철(关喆)''' 홍콩, '''이극근(李克勤)''' 대만, '''[[코코리#s-2|코코 리]]([이민] 李玟), 신(信), [[서가영]](徐佳瑩)''' 그리고 한국가수로는 '''[[황치열]]'''이 출연한다. 그리고 대만가수 조전(赵传)이 투입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첫 회부터 한 명을 탈락시킨다고 하고 사회는 이극근(李克勤)이 본다고 한다. 재미난 점은 이번엔 중국 대륙 출신 가수가 관철뿐이라는 것이다. 코코 리는 홍콩계 미국인(단, 왕년에 대만을 위주로 활동을 했기 때문에 대만 가수로 보는 시각이 있다.)이고, Haya 밴드는 몽골족 출신의 밴드다. 그 외에도 신(信)은 시즌3 가왕전 듀엣경연에서 실력을 선보인 바가 있다. 그리고 이 방송은 황치열이 중국에서 제대로 주목받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